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이끄는 제롬 파월 의장.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의 신속한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도 새로운 유동성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와의 구체적인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결국, 여론에 등을 떠밀려 고용유지 등의 원칙도 없이 기업을 지원해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만 부추기고 국민 혈세만 낭비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새로운 유동성 대책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한국은행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특별대출은 기본적으로 한계와 제약이 있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처럼 정부와 협의를 거쳐 정부의 신용보강을 통해 시장안정에 대처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헬리콥터 머니’ 제도화

실제 미 연준이 가동 중인 10개의 긴급대출제도 중 대부분은 미 재무부의 손실 보전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 연준이 내놓은 2조3000억 달러 규모의 유동성 대책 중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하락한 기업의 회사채를 매입하겠다는 부분도 재무부의 보증을 통해 가능했다. 연준은 손실 위험이 없는 미 국채 등만 매입할 수 있었는데 재무부가 부담을 떠안으면서 부실기업까지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대책을 두고 한편에서는 이른바 ‘헬리콥터 머니’의 제도화가 이뤄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자금난을 겪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기획재정부와 한은의 역할론도 부각되고 있다. 정부가 100조원 규모의 기업구호 긴급자금을 공급한다고 했지만 부실기업이 체감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민간 경제연구소 한 관계자는 “민간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동반 부실화에 대한 우려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을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정부와 한은이 나설 수 있다는 확신을 시장에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정부가 손실을 보증해주는 유동성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관련 논의는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정부가 손실을 보전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아직 시기가 이르다고 보고있다. 반면,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연준이 발표한 대책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라며 “국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시장이 안정화됐지만 위기가 또 발생할 수 있을 만큼 기재부와 한은의 협업체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부실기업 지원 기준 논의도 ‘지지부진’

부실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기준에 대한 논의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기간산업에 대한 신속한 지원만 촉구할 뿐,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조치로는 총수일가 사재출연만 거론되고 있다. 반면 연준은 지난 9일 대책에서 기업 대출 지원안을 발표하면서 고용유지와 자사주 매입·배당 금지 등이 담긴 세세한 조건을 제시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인력을 감축하거나 자사주를 매입해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일탈을 막겠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당시, 연준도 대형 금융기관을 지원하면서 부실 은폐 의혹에 시달리자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앞서 미국 정부는 2조2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면서 지원받은 기업은 자사주 매입을 제한하고 9월말까지 직원 수를 90%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항공업계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지원을 해야 할지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지원이 필요하지만 그동안 방만하게 운영해 온 부실기업까지 지원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업종별로 어떤 상황인지, 세세하게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영·윤승민 기자 sypark@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